나머지 얘기들(2)2013.10.05 23:48

내가 귀국한 지 어느 덧 1년이 지났던가. 일상에 치여 까맣게 잊고 있었다.


뭐 이렇게 된 김에... 


다들 종종 물어오는 "책은 쓰고있냐?"에 대한 질문의 보답으로, 전에 써뒀던 글이나 올려보련다.


(앞으로도 종종 블로그 쓰기 귀찮을 때마다 전에 썼던 글을 올릴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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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그 이후...



언젠가부터 단 하나의 장면만이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했다. 때는 2012928. 장소는 인천공항 입국심사대. 입국심사를 관장하는 법무부 직원이 내 여권을 훑어본다. 한 장, 두 장 넘겨보다 보니 출입국 도장의 행렬이 끝나질 않는다. 최근 출국 기록은 작년 6월이니, 15개월 넘는 시간동안 밖에 있다가 이제 들어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몰골이 이렇게 말이 아니구나. 측은지심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긴 시간을 여행하고 오다니. 오랜만에 밟는 한국 땅인데 친절하게 인사하기로 한다.

 

어서 오세요, ~ 여행 길게 하셨네요. 힘드셨죠? 수고하셨습니다. (미소)”

 

 

기나긴 여정의 끝이었던 귀국 전날 밤. 호스텔 사람들은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불 꺼져 캄캄해진 도미토리에서 각자의 꿈나라로 간 모양이다. 허나 나는 멀뚱멀뚱 눈을 뜨고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집에 간다는 생각, 인천공항으로 들어간다는 생각 때문일까.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새벽 내내 설레는 마음에 잠을 뒤척였다. 눈 좀 붙이면 깨고, 콩닥콩닥 뛰는 심장을 외면한 채 다시 눈 좀 붙이면 또 깨고…….

그리고 다음 날, 비행기는 무사히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인천행 비행기 안에서의 긴장과 설렘은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한반도의 논과 밭만 보고도 반가움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공항에서 도처에 널린 한글들은 또 어찌나 반갑던지. 게다가 입국심사대 앞에서 한복 입고 인사하는 아가씨마저 반가웠다.

이제 그토록 머릿속에서 그려왔던 법무부 직원의 따스한 인사가 남았다. 아니 그런데 이럴 수가. 여권을 컴퓨터에 갖다 대고는 내 얼굴 한번 힐끔 보는 것이 전부였다. 입국도장 찍힌 여권을 건네받는 것 외에 더 이상의 상호 활동은 없었다. 나라마다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대체로 외국 출입국 심사대에선 해맑은 미소와 몇 마디 대화를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선 내가 내국인이라 그런 것일까. 아니다. 저런 쌀쌀맞음은 한국인의 내재된 속성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인다는 것을 한국인인 내가 잘 알고 있었다. 서운하고 아쉽긴 했지만 아무렴 어떠랴, 그토록 꿈꿔왔던 무사귀환을 했으니 그냥 넘어가자.

그렇게 오랫동안 꿈꿔왔던 인천공항을 뒤로한 채 공항철도를 타고 홍대입구역에 내렸다. 15개월 만에 서울 땅을 밟는 그 기분은 많은 사람들이 겪기 힘든, 그러나 정작 겪고 있는 나조차도 이게 무슨 느낌인지 알기 힘들만큼 아리송했다.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만큼의 묘한 기분이랄까. 게다가 집으로 들어가는 지하철역과 버스를 보니, 그걸 또 직접 타기까지 하니 얼마나 어색하고 얼떨떨했는지 모르겠다. 어릴 때 살던 고향에 오랜만에 찾아가면 비슷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여행 중 만난 여러 사람들이 나에게 귀국하고 가장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어봤었다. 여행 초기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었는데, 여행이 중반을 지나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명확해졌다. 그것은 바로 여행에 지친 내 몸을 집에서 푹 쉴 수 있게 일주일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이었다. 더 이상 어느 곳으로도 떠돌지 않고,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집 밥을 먹으며 말이다. 그것이 내가 귀국 직후 가장 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런데 그랬던 내가 아이러니하게도 귀국 직후 제주도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사실 친척 모두가 떠나는 여행으로, 몇 달 전부터 잡혀 있던 예정된 스케줄이었다. 나 역시 그 일정에 맞춰 전날 귀국하는 항공편으로 예약한 것이다. (사실은 귀국을 이날 아침에 하여 인천공항에서 바로 김포공항으로 갈 생각이 지배적이긴 했다그렇더라도 전날 인천공항으로 귀국한 내가 바로 다음날 김포공항에 가서 또 비행기를 타야했던 건 꽤나 재밌는 일이 아닌가.) 그랬기에 그때까지만 해도 여행이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15개월이나 여행했는데 3일 더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있겠는가. 여행이라는 연장선상에 있었기에 제주도 여행까지도 그렇게 세계일주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그러고 나니 지난 여행의 기억과 감흥이 잊혀진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난 아직도 여행 중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 서울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정말 하고 싶었던 대로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일주일 이후부터였다. 도난당했던 폰을 보험처리 하여 폰을 마련하니 진정한 서울사람이 되었다. 친구들, 지인들을 만나기 시작하니 본격적인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다. 갑자기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하여 인풋이 많아지니 내 머리 용량의 한계로 여행의 기억은 스멀스멀 지워져만 갔다. 하루 뒤, 이틀 뒤, 삼일 뒤, 일주일 뒤, 이주일 뒤, 한 달 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서울 생활에 적응하고, 여행 때의 감흥도, 귀국 직후 묘한 기분도 모두 방사능 반감기처럼 걷잡을 수 없이 줄어들고 있었다. 그럴수록 내 마음은 한 구석엔 허전함이 자라났다. 여행의 추억이 모두 잊혀진 다는 사실이 아쉽고 안타까웠다.

아무리 15개월간의 모든 대소사를 30만장의 사진과 동영상으로 카피 떠놨다 해도 이러고 싶진 않았다. 내 머릿속에서, 내 기억에서 사라지는 걸 원치는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어쩔 수 없나보다. 손으로 막는다고 흐르던 계곡 물이 멈출 수는 없으니까. 이제 그 모든 기억들도, 추억들도, 여행의 감흥들도 슬슬 놔줄 때가 된 것이다.

 

, 내가 하고 왔던 15개월의 여행은 한 여름 날의 꿈에 불과한 것일까?’

 

언제 그런 긴 공백이 있었냐는 듯, 원래 타던 버스와 지하철을 본능적으로 척척 타는 내 모습, 지각하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뛰어서 강의실에 들어가는 내 모습, 학우들과 학생 식당에서 다 같이 밥 먹는 내 모습, 그렇게 먹고도 부족해서 리필 하는 내 모습……. 어느 샌가 여행 전의 나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내 모습에서 15개월이라는 시간이 구운몽이었는지, 내 자신이 성숙해지는 숙성의 시간이었는지, 그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곱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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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현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방진욱

    말하는건 안그런데 글은 꽤 오그라들게 쓰넿ㅎㅎㅎ

    2013.10.05 23:5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ㅎㄱ

    여행 막바지에 빨리 집에 오고싶었음 아님 계속 여행하고싶었음?ㅋㅋ

    2013.10.06 22:4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박초이

    근데 후원 받아서 여행 갔다면서... 글쓰는 거를 귀찮아 하면 안되는 거 아닌가? 사람들은 너가 글을 열심히 써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후원을 해줬겠지^^ 그리구 나는 인도여행기를 주로 봤어. 근데 인도는 너한테 별 매력이 없었나봐.하지만 나한테는 정말 소중한 나라거든. 바라나시가 더럽다는 식의 글은 좀 그런거 같아. 바라나시 좋아하는 사람 되게 많아~ 그런 사람들도 좀 생각해 줬음 좋겠다. 그럼 다음 글 기다릴게!

    2013.10.28 10:0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열심히 써야지...ㅠㅠ

      그리고 바라나시가 좋은거랑 더러운거랑은 별개지 ㅋㅋ
      난 바라나시가 더럽다는 객관적 사실만 얘기했지 싫다거나 이상하다고 하진 않았어..^^;
      설사 내가 싫다고 해도 뭐 그거야 내 의견이지. 뭐 내가 사람들한테 싫어하라고 한 건 아니니까

      2013.10.28 23:41 신고 [ ADDR : EDIT/ DEL ]
  4. 상현

    여행의 기억은 희미해져도, 여행 하면서 배운 것들이 언제나 너를 지탱해 줄거야.. ㅋㅋ
    그리고 너에겐 엄청난 양의 사진이 있자나.. ㅎㅎㅎ

    나도 여행 후에 귀국 했을때 그 묘한 느낌이 있었지..
    길지도 않았지만 외국에선 누구나 마주치면 인사하고 그랬는데, 한국 들어 오니 누구 하나 눈을 마주치려고 하는 사람이 없더라는.. ㅋㅋ

    2013.10.30 12:2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맞아요 그거 참 신기하죠 ㅋㅋ 한국 사람들은 겉으로는 무뚝뚝해요 ㅋㅋ

      2013.10.31 00:13 신고 [ ADDR : EDIT/ DEL ]
  5. 김승환

    이런 좋은 글을 이제야 봤네ㅋ 책 꼭 써라
    그리고 빨랑 빨랑 잊혀져야지 다시 새로운 추억을 머리에 집어넣지 않겠어?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이제 나랑같이 서울사람으로써 술한잔 기울이자고ㅋ

    2014.03.16 09: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같은 서울사람이 아니라네 ㅋㅋㅋ 나는 지금 하얼빈 사람이여 ㅋㅋ

      서울 가면 봅세!!

      2014.03.23 11:20 신고 [ ADDR : EDIT/ DEL ]